뒤로가기

에너지신문

[월요마당] 석탄의 유산, ‘넥스트 에너지’ 징검다리로

2026-10-16

▲ 이상협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 이상협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에너지신문] 인공지능(AI) 혁명과 첨단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초거대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 팹(Fab)은 24시간 단 0.01초의 순간전압강하도 허용하지 않는 막대한 고품질 전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청정 발전원과 전력망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는 긴 세월이 걸린다.

우리 사회가 마주한 에너지 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총량 부족에 머물지 않는다. 전력 수요 폭증과 공급 시점 사이의 구조적 시차인 ‘시간의 절벽’, 그리고 생산된 전력을 필요한 현장으로 제때 보내지 못하는 ‘공간의 절벽’이 동시에 닥쳐왔기 때문이다.

국가 탄소중립 계획에 따라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는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문을 닫는다. 기후위기 대응과 무탄소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시대적 당위 앞에서 탄소 다배출 전원의 퇴장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현장의 정책 실행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모순이 목격된다. 기존 석탄발전소를 완전히 헐어내 백지화하고, 전혀 다른 부지에 신규 가스(LNG) 발전소를 짓겠다는 구상이 대표적이다.

천연가스 역시 과도기 화석연료임은 매한가지인데, 입지를 새로 물색하고 주민 갈등을 겪으며 천문학적 토목비용을 쏟아붓는 것은 명백한 국가적 자원 낭비다. 진영 논리의 도그마에 갇혀 무조건적 철거만을 고집하는 것은 기후 대응이 아닌 행정적 관성에 가깝다.

발상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에너지 전환의 본질은 과거의 인프라를 완전히 부정하는 파괴가 아니라, 이미 축적된 물리적 자산을 얼마나 미래 전원으로 영리하게 이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퇴역을 앞둔 석탄화력발전소는 단순한 화석연료의 무덤이 아니다. 수십 년간 국가가 막대한 공공자본을 투입해 완성해 놓은 최고의 에너지 요충지다.

수 기가와트(GW)급 전력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초고압 송전선로와 대용량 스위치야드(변전소), 대규모 냉각용수를 조달할 취수권과 관로, 그리고 발전 설비에 익숙한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이 완벽하게 집약된 공간이다.

이 자산의 가치는 송전망 포화 시대를 맞아 더욱 절대적이다. 신규 초고압 송전선로 하나를 건설하는 데 10~13년 이상의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이미 계통망 대동맥과 직결된 석탄 부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을 선물한다.

더 나아가 이는 전력 체계를 ‘선(線)’에서 ‘면(面)’과 ‘공간’으로 대전환할 결정적 계기다. 해안가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수도권으로 장거리 송전선로에만 의존해 실어 나르던 방식은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다.

석탄발전소의 배후 부지와 전력망을 거점 삼아 첨단 제조시설과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분산 에너지 클러스터로 전환해야 한다. 계통 사고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고 지역 소멸도 막아내는 공간의 재창조다.

이 공간 위에 ‘시간의 징검다리’를 정교하게 놓아야 한다. 소형모듈원자로(SMR)나 청정수소 발전과 같은 차세대 무탄소 전원(Next Energy)이 기술 검증을 거쳐 완전히 안착하기까지는 최소 10년 안팎의 공백기가 불가피하다.

이 전력 공백기를 방어하기 위해 노후 석탄 부지를 고효율 복합화력으로 전환하되, 고효율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결합한 ‘가교 전원’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

글로벌 고객사의 탄소 규제를 통과하면서 당장의 기저전력을 지켜내는 실질적 수단이다. 이후 2030년대 중반 차세대 전원이 성숙기에 도달하면, 검증된 석탄 인프라 위에 SMR 등의 무탄소 기저부하를 안착시키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DOE) 분석에 따르면 석탄 인프라를 재활용할 경우 초기 건설비(CAPEX)를 최대 35% 절감할 수 있다.

진정한 에너지 전환은 옛것을 무조건 부정하는 단절의 역사가 아니다. 과거 산업화를 묵묵히 지탱해 온 석탄의 거대한 물리적 유산을 디딤돌 삼아 차세대 에너지를 얹을 때, 우리는 시간의 절벽과 공간의 한계를 동시에 뛰어넘을 수 있다.

구관이 남긴 축적의 지혜를 딛고 설 때, 대한민국은 전력 대란의 공포 없는 확고한 산업 경쟁력과 지속가능한 탄소중립의 미래로 담대하게 나아갈 것이다.

출처 : 에너지신문

[사설] 전력망 확충, 지역사회 신뢰 확보해야 Green DME Alliance 출범…선박·발전 시장 개척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