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논단] 네팔의 기후 청구서, 고배출국은 행동으로 답하라
2026-09-02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에너지신문] 시시르 카날(Shisir Khanal) 네팔 외교장관은 1일 대홍수를 ‘히말라야 쓰나미’로 규정하고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에 기후 보상을 요구하면서 “이는 자선이 아니라 법적·도덕적 책임의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네팔의 배출량은 사실상 미미하지만, 네팔 국민이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기후위기의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호소했다.
네팔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는 데서 나아가 ‘기후정의와 배상’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팔이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 안팎에 불과하다. 고탄소 산업화의 혜택은 거의 누리지 못했지만, 녹아내리는 빙하와 홍수, 산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반면 화석연료를 태워 부를 축적한 국가들은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거나, 기껏해야 멀리서 애도를 표하고 구호물자를 보내는 데 그치고 있다.
이번 대홍수의 모든 원인을 기후변화에만 돌릴 수는 없다. 취약한 방재체계와 위험지역 개발, 부족한 조기경보도 피해를 키웠을 것이다.
그러나 고배출국들이 누적시킨 온실가스가 히말라야의 빙하와 영구동토를 불안정하게 했고, 이것이 재난 위험을 증폭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위기의 원인을 거의 제공한 적이 없는 네팔이 그 피해를 집중적으로 떠안는 것은 명백히 부당하다.
네팔 정부가 내민 기후 청구서를 고배출국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고배출국의 책임을 재난이 발생한 뒤 이재민 구호와 피해 복구를 위해 얼마간의 물자와 돈을 지원하는 문제로 좁혀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의무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구호금과 배상금을 제공해도 온실가스 배출을 계속한다면 히말라야의 빙하는 계속 녹고, 더 큰 재난과 더 많은 희생자가 뒤따를 것이다.
따라서 고배출국이 네팔의 요구에 답하는 첫 번째 방법은 구체적인 전환 계획을 지금 실행하는 것이다. 배출량을 빠르게 줄여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고,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에 도달해야 온도 상승을 멈추고 기후를 안정화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중국, 인도, 러시아, 일본, 한국을 비롯한 주요 배출국은 탄소중립 선언과 장기적인 넷제로 목표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2050년의 먼 약속보다 지금부터 2030년까지 무엇을 얼마나 줄일 것인지가 중요하다. 전력·산업·수송·건물 등 부문별 감축목표와 연도별 일정을 제시하고, 필요한 예산과 법률, 책임기관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매년 이행 결과를 공개하고 목표에 미달하면 정책을 즉시 강화해야 한다.
신규 석탄발전과 새로운 석유·가스 개발을 중단하고, 기존 화석연료 시설의 단계적 폐쇄 일정을 확정해야 한다.
화석연료 보조금은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저장장치, 산업공정 전환, 대중교통과 건물 효율 개선에 돌려야 한다.
공적금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도 해외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 국내에서 배출을 줄이면서 해외에 석탄과 LNG 시설을 건설하는 것은 전환이 아니라 배출의 이전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의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각국의 역사적 배출량과 현재 배출량, 1인당 배출량과 경제적 능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 등 산업화를 먼저 이룬 국가들은 더 빠르고 크게 감축해야 한다.
현재 최대 배출국인 중국도 경제 규모와 배출량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개발과 빈곤퇴치의 과제가 남아 있는 국가에는 더 넓은 전환 여지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대규모 배출을 무기한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화석연료와 중화학공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온실가스 고배출 제조업 국가이자 해외 에너지사업의 주요 투자국이다. 정부가 네팔에 긴급구호대를 파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국내 감축을 미루면서 해외 LNG와 화석연료 사업을 계속 지원하고, 재난이 발생하면 구호대를 보내는 방식으로는 기후책임을 다할 수 없다.
녹색전환을 말하면서 이러한 정책을 지속한다면 한국 정부의 입장이 이중적이고,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기후피해에 대한 배상도 이뤄져야 한다. 고배출국은 네팔의 복구비를 대출이 아닌 무상재원으로 제공하고, 손실과 피해 기금(Loss & Damage Fund)을 과거와 현재의 배출량과 부담 능력에 따라 안정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위험을 알면서도 석유와 가스 생산을 확대해 막대한 이익을 얻은 화석연료 기업에도 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 히말라야 빙하 감시와 조기경보 체계에 필요한 기술과 데이터 역시 공공재로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배상이 감축을 대신할 수는 없다. 계속 배출하면서 돈으로 책임을 면하려는 것은 명백히 기후 정의에 반한다.
배상은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이고, 전환은 앞으로 발생할 피해를 막기 위한 의무다. 고배출국은 두 가지를 모두 이행해야 한다.
가장 적게 배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고,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들이 애도와 소액의 구호금으로 책임을 대신하는 세계는 정의롭지 않다.
네팔이 보낸 것은 단순한 원조 요청서가 아니다. 화석연료 경제를 끝내고 실질적인 전환을 시작하라는, 기후위기 최전선 국가들이 인류를 대신해 보낸 청구서다.
고배출국이 내놓아야 할 가장 중요한 답은 말이나 돈만이 아니다. 구체적인 목표와 일정, 예산과 책임기관을 갖춘 전환계획을 지금 실행하는 것이다.
기후를 안정화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구호와 배상도 끝없이 반복되는 참사를 따라잡을 수 없다. 한국도 그 행동의 책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출처 : 에너지신문